중국에서 조선족으로 살았는데 지금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무슨 일 당하는가 보쇼
기억과 미래, 국경을 넘는 한민족
인천시, 경기 안산시 등 다문화가 섞이는 지역들이 크게 늘어왔다. 사진은 서울 영등포구 대림동 차이나타운. 김경호 선임기자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중국에선 조선 사람으로 살았는데, 한국 오니까 자꾸 중국 사람이라고 해요.” 조선족 제자가 푸념하듯 한마디 했다. “한국 사람 차별하는 일본에서 떳떳하게 살려고 ‘본명선언’까지 했는데, 한국에 오니 말투가 이상하다고 ‘반쪽발이’ 취급을 해요.” 재일동포 3세 제자도 마음의 상처를 드러냈다. “고려인 어머니와 어릴 때 한국에 와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아버지가 아르메니아인이라 동포가 아니라고 출국하랍니다. 아버지가 고려인이고 어머니가 다른 민족인 친구들은 동포라는군요.” 고려인 4세 청년이 이해할 수 없다고 답답해한다. 북한 군인들 죽은 사진을 보이면서 “넌 이런 거 보면 슬프냐?”고 빈정대는 직장 동료 때문에 속상했다는 탈북청년도 있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함께 살고 있는 다른 나라 출신 동포들이 자주 마주치는 억울한 현실이다.
국경을 넘는 한민족 이주와 이산의 역사는 조선왕조 말기에 살길을 찾아 만주와 연해주, 하와이와 멕시코로 떠난 사람들로부터 시작되었다. 일제에 의해 토지를 빼앗기고 북간도, 서간도로 이주한 사람들, 독립투쟁을 위해 해외로 망명한 사람들, 침략전쟁의 도구로 징병, 징용, 위안부로 사할린과 홋카이도, 규슈 탄광과 남태평양의 섬으로 끌려간 사람들이 뒤를 이었다. 일제가 패망했을 때 당시 한민족 구성원의 약 5분의 1은 한반도를 떠나 있었다. 해방이 되었어도 이들 중 상당수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주변 강대국의 국민이 되거나, 무국적 소수민족이 되었다.
새로운 국경과 동아시아의 냉전 체제에 막혀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은 거주국의 성격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존재가 되었다. ‘재일동포’는 일본 제국의 ‘신민’(臣民)으로 전쟁터와 일터로 끌려갔던 사람들이다. 전쟁에 지자 일본은 이들을 다른 민족 출신이라고 ‘외국인’, ‘제3국인’, ‘난민’ 신분이 되게 했다. 일제가 사할린으로 보낸 한인들은 소련 땅이 된 그곳에 ‘무국적자’로 억류되었다. 일본인들은 모두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사할린 동포’는 돌아오지 못했다. 러시아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의 사막으로 강제이주된 ‘고려인’은 소련의 해체로 독립한 국가들의 소수민족이 되었다. 만주로 갔던 사람들은 중화인민공화국 수립과 함께 ‘조선족’이란 소수민족 중국 국민이 되었다.
단일민족 신화로 인해 ‘한민족’은 동질적인 혈통, 언어, 역사를 가진 하나의 문화집단이라고 흔히 여기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양한 문화 특성이 있다. 특히 해방 뒤 분단된 두개의 국가와 한반도 역사에 개입한 주변 강대국들에 편입되어 살아오면서 각기 다른 ‘국민’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한민족’이란 ‘민족’ 정체성을 공유하면서도 다른 역사를 경험하며 언어 문화적 다양성도 아울러 갖게 된 것이다.
탈냉전 시대에 한민족 구성원들은 다양한 경계를 넘어 교류와 재이주를 하고 있다. 현재 한국 사회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약 반수는 주변 강대국의 소수민족으로 살다가 최근에 재이주한 한민족 동포들이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법 규정뿐 아니라 사회적 지위도 크게 다르다. 북한 출신 주민과 사할린에서 귀환한 노인들은 바로 대한민국 국민이 되지만, 다른 동포들은 출신국의 경제력에 따라 다양한 규제와 차별의 대상이 된다. 심지어 법적으로 국민 자격을 회복한 동포들조차 여전히 ‘우리’가 아니라 ‘그들’로, ‘주변인’, ‘경계인’, ‘2등 시민’으로 여긴다. 동포들에 대한 차별은 다른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유사하면서도 더욱 심각한 상처를 남긴다. 한국 사회에서 이들이 주관적으로 느끼는 차별은 다문화 이주민 집단 중에서 가장 강하다고 한다. 얼마나 미안한 일인가.
불행한 20세기에 많은 한민족 구성원들은 식민과 전쟁, 냉전과 이산으로 굴절된 삶을 강요당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들이 국경에 갇힌 피해자였던 것만은 아니다. 무수한 사람들이 국가의 통제를 넘어서 전략적, 실천적으로 국경을 넘나들며 국가를 초월한 민족의 역사를 열었다. 이제 민족, 국민(국가), 문화를 동일시하고, 그것의 일치를 이상화해온 단일민족국가의 고정관념과 국가 중심의 편협한 ‘국사’ 개념은 극복할 때가 되었다.
경계를 가로지르는 초국가적 이동이 보편화하고 있는 이 시대에 민족, 국민, 주민의 복합적 성격과 다양한 정체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존중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한민족의 초국가성에 대한 이해와 다문화 정체성 존중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기본적인 요건이다. 이는 남과 북, 두 국가 구성원들의 상호이해와 문화통합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다./한겨레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